조현병 그리고 심리치료

지난 번에는 조현병에 대해 간략하게 풀어 보았습니다. 이번 포스팅에서는 심리치료가 조현병 환자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 해요. 앞서 강조했듯이, 조현병의 최전선 치료는 약물을 통한 치료입니다. 약물치료를 통해 양성증상이 어느 정도 완화된 후, 환자에게 상식과 논리적인 대화의 공간이 있을 때에 비로소 심리치료의 효과가 침투 할 수 있습니다. 심리치료는 “말”과 “대화”를 통해 치유와 변화를 이끌어내는 치료이기에 상식과 논리의 공간이 없으면, 즉 대화가 통하지 않는 상태라면 소용이 없으니까요.

조현병 환자들은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대개의 경우) 환청으로 인해, 혹은 환청의 빈번함으로 인해 큰 정신적 고통과 혼란을 겪습니다. 내 의지와 관계없이 각각 다른 채널의 라디오 다섯 대가  내 귓가에서 하루종일 꺼졌다 켜젔다를 반복한다고 한 번 상상해 보시겠어요? 환청을 통한 목소리가 끊임없이 나를 비하하고 조롱한다면요? 혹은 타인을 해치라고 끊임없이 명령한다면요?

“넌 악마의 자식이지. 그래, 지금 당장 목을 매달아. 없어져 버리는 거야. 그래야 이 세상이 구원될 수 있어.”

“네 앞의 어머니는 마술을 통해 변장한 마녀야. 그 마녀가 이미 네 어머니를 죽였지. 그녀가 너에게 건네는 그약은 독약이야. 그 약을 물리쳐. 안 그러면 넌 죽게 되. 그 여자를 죽여. 안 그러면 너와 네 가족 모두가 목숨을 잃게 될거야. 그래, 지금, 지금 당장!”

위의 따옴표는 제가 치료했던 환자들이 실제 겪었던 환청의 내용입니다.

짐작이 조금은 갈까요? 그들이 겪는 혼돈과 고통 말이죠.

심리치료가 환청을 완화하는 데 큰 도움이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약물 치료를 통해 환청이 많이 완화가 된 경우, 심리치료를 통해 환청에 대처하는 법, 가령 내적 자극 (internal stimuli)에 반응하지 않는 법, 특히 명령하는 환청에 저항하는 법, 환청과 현실 감각을 구분하는 법, 환청으로 인한 스트레스, 우울, 불안한 감정을 조절하는 방법 등을 심리치료를 통해 배워나갈 수 있습니다. 조현병 환자들은 이미 스트레스 상태로 지내기 때문에 약간의 스트레스가 더해져도 빠르고 심하게 스트레스 반응을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맞는 스트레스 조절법과 긴장 완화법을 배우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물론, 심리치료를 통해 그런 기술들을 배워나갑니다.

아래 클립은 한국에서도 유명한 CNN 간판 언론인, 앤더슨 쿠퍼 (Anderson Cooper)가 정신분열증 일일체험을 하는 내용입니다. 환청 자극 이어폰을 장착한 채로 인지능력 문제를 풀고, 인터뷰 질문에 답변하고, 홀로 길을 걷어 보는데요. 문제를 푸는 중에는 목소리 때문에 집중이 안 된다며 “도저히 못하겠네” 그럽니다. 길을 걷는 중 ,끊인없이 말을 거는 목소리에 “대답을 하고 싶어진다”고 합니다. 끝으로 너무 불쾌한 경험이고 빨리 이어폰 빼버리고 싶다며, 조현병을 겪는 사람의 경험이 얼마나 힘든건지 배웠다고 합니다. 영어 클립이지만, 언어와 관계 없이 쿠퍼 씨의 괴로운 마음이 이심전심 잘 전달되리라 봅니다.

길을 걷는데 중얼중얼 혼자말 하는 사람을 지나친 경험, 다들 한번쯤 있죠? 양성 증상이 심한 경우인데요. 자기 안의 세계에서 뇌가 만들어 내는 가짜 자극들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외부의 진짜 현실과 격리되어 있는 상황이거든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런 환자의 상태를 이해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렵죠. 그러니 멀리하고 꺼려하구요. 그런 이유로 타인과 사회와의 고립이 깊어지고, 사회성과 대인관계 기술을 기를 수 있는 기회가 점점 요원해지죠. 그래서 많은 조현병 환자들은 사회성 및 대인관계 능력이 부족합니다. 악순환의 고리를 끊지 않는 한, 고립은 더욱 심화됩니다. 심리치료는 “관계” 안에서 이루어지는 여정이기에, 내담자와 치료자가 함께 관계를 짓는 경험을 통해 사회성을 함양하고 대인관계 기술을 배워나갑니다.

이번 포스팅은 이제 마칠까 합니다.

다음번엔 심리치료와 망상을 주제로 이야기해 보도록 할께요.

블로그를 시작하며

바쁘다는 말을 주술처럼 내뱉으며 살다가도삶의 무료함 끝에 스며드는 헛헛함의 떫은 감정이 낯설지만은 않습니다. 어제와 오늘이 같고, 내일 또한 오늘과 다를 바 없으리라 짐작하지만, 삶은 종종 일상을 배반합니다. 소용돌이 쳐대는 감정에 삶이 휘청하는 날, 가루가 되어 흩날리고 싶은 날, 내 안에 침잔해 있던 불순한 마음을 대면하는 날, 모처럼 누구한테건 내 감정을 다 토해내고 싶은 심정인데 막상 내 얘기 들어줄 사람이 떠오르지 않는 날. 그런 쓸쓸하고 쓰라린 날들이, 우리 모두에게 있었을 겁니다. 오늘, 당신의 날이 그러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관계 안에서 상처를 주거니 받거니 하며 우리는 그렇게 살고, 배우고, 성장해 나갑니다. 때로는 관계의 밀도로 인해 숨이 막히기도 하고, 타인의 사랑이 억압과 폭력으로 환치되어 다가올 때도 있습니다. 혹은 반대로 무관심과 몰이해에 상처를 받기도 하고, 애정에 목말라 아프기도 합니다. 차이와 다름이 오해의 씨앗이 될 때도 있고, 숨은 욕망이 갈등의 씨앗이 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각자의 방법대로 삶의 무게를 이겨내며 오늘 하루도 살아내고 있습니다. 대항해 보기도 하고, 냉소로 응대하거나, 애써 외면해 보기도 합니다. 장애물을 치운답시고 온힘을 다해 보지만, 속된 말로 삽질 열심히 하며 더 깊은 늪으로 빠져들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냉소는 어느 순간 내게 칼날같은 치명상을 입히기도 합니다. 모른 척 혹은 부정하는 동안 문제는 곪아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그런 의미에서 심리치료는 나를 따뜻한 눈으로 깊이 찬찬히 들여다보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나의 좋은 점 뿐만 아니라 차마 인정하기 싫은 부분까지도 결국엔 감싸안아야 하겠죠. 그리고 삶의 고단함, 내 안의 유약함 혹은 이율배반, 관계에서의 고통을 토해내는 과정을 포함하기도 합니다. 그 과정을 통해 상처가 아물고, 성장하고, 결국 견뎌내는 힘이 생기는 것이니까요.

수련 기간 중 1년동안 Asian Pacific Center에서 주로 한국어가 편한 한국사람을 대상으로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며 차차 적응을 했지만, 처음에는 지축이 뒤집어지는 느낌같다고나 할까요? 선택지에 없는 상황이 자꾸 발생하는 까닭이었지요. 심리치료에 대한 백지에 가까운 이해, 그럼에도 심리 장애에 대한 지독한 오해와 편견, 그로 인한 수치심 및 거부감 등에 맞딱들였으니까요. 그런 제 경험을 비추어 정성스레 벽돌을 쌓듯이 어느 누구에게는 의미있는 내용이길 바라는 마음을 깃들여 심리치료와 검사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보려 합니다. 

이제 지구별에 한 켠 전세내고 사는 동료 지구인으로서의 따뜻한 시선과 유대감으로 블로그를 시작할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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